[#서양철학 #사상가] 공포의 쌍생아, 토마스 홉스 (1588~1679) - 배경, 생애, 사상, 의의, 감상
이 글의 순서
Ⅰ. 사회적 배경과 생애
Ⅱ. 저술 내용을 통해 본 사상
1. 사회계약설
2. 정념의 운동
3. 선과 악
Ⅲ. 의의
Ⅳ. 감상
Ⅰ. 사회적 배경과 생애
1. 정치적 혼란
홉스가 태어나던 해 유럽에서는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격동이 예견되고 있었으며 그의 출생 역시 극적인 사건과 연관되어 있었다. 1588년 4월 5일, 홉스의 어머니는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쳐들어온다는 소문에 놀라 홉스를 조산하고 말았다. 홉스는 자서전에서 밝힌 대로 공포와의 쌍생아였다.
홉스가 태어난 해부터 그의 유명한 저서 《리바이어던》이 출간된 1651년까지는 종교개혁의 여파로 내란과 폭동이 유럽을 휩쓸던 시대였으며, 영국 역사상 가장 참혹한 피해를 불러온 사건 중 하나인 영국 내란으로 왕이 처형당하는 등 엄청난 격변이 몰아친 시대였다.
2. 과학혁명의 물결
학자들은 17세기를 근대 과학의 태동기라고 부른다. 동시에 이 시대는 갈릴레오가 교회의 제재를 받은 시대이기도 하다. 17세기에 교의에 대한 신교와 구교의 논쟁은 극심하게 계속되었으며, 유럽의 많은 철학자는 회의주의적 입장에서 스콜라주의적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공격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는 인간의 관찰에 의한 인지가 어느 정도 실제 사실과 일치한다고 이야기되었다. 그러나 망원경이 발명되는 등 자연과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지각 능력의 불완전함이 밝혀졌다. 따라서 회의주의자들은 새로운 인식론을 기반으로 새로운 과학 체계를 세우려 했다.
프랑스 체류 기간 동안 홉스는 메르센, 데카르트, 가상디 등과의 교류 그들의 저작을 통해 과학의 새로운 발달을 알게 되고 회의주의를 접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영국에서보다 더 세련되고 민감한 지적 환경과 학문의 동료들을 만났다. 결국 프랑스 체류기간은 홉스 사상의 전환점이 되었다.
Ⅱ. 저술내용을 통해 본 사상
1. 사회계약설
사회 계약설은 국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규명한 학설이다. 간단히 말하면 국가는 사회 구성원들의 자유스러운 합의를 통하여, 즉, 계약으로 국가를 형성하는데 합의하고, 이를 통해 국가가 창설되었다는 주장이다. 사회계약은 통치자와 피치자의 자유스러운 합의에 의하기 때문에 통치자와 피치자의 상호 권리와 의무를 인정하고 있다.
홉스는 사회계약에 대해 명확하고 자세하게 말한 최초의 근대 정치철학자이다. 홉스는 개인의 본성은 이기적이며, 스스로 이익을 위해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홉스는 자연 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서로 다투던 자연 상태 속의 인민이 그들 개인이 가지던 개인의 권리를 양도하여 주권을 창조했다고 보았다. 홉스는 국가를 리바이어던이라고 칭했다. 이는 성경에 등장하는 괴물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사회계약의 산물인 국가의 절대성을 강조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2. 정념의 운동
홉스 사상에 있어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정념이다. 사회 계약설이 당대의 혼란한 세상을 반영한다면, 정념은 당대의 수학·과학의 발전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홉스는 프랑스 여행 도중 유클리드 기하학을 접했고, 이를 통해 세상을 설명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인간의 감정과 상태를 모두 정념의 운동으로 인식하였다. 그가 말하기를 인간은 어떠한 것에 정념이라는 요소가 끌리거나 밀어내거나 한다고 하였다. 이때 끌리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이고 밀어내는 것은 불쾌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후에 공리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3. 선과 악
홉스는 선과 악의 존재를 부정하였다. 홉스의 자연 상태는 선악의 기준이 전혀 없는 상태이다. 홉스는 주권을 양도받은 리바이어던에 의해 선과 악의 개념이 생겨난다고 하였다. 즉 리바이어던이 옳다고 하는 것을 따르는 것이 곧 선이며 이를 따르지 않는 것은 곧 악이라는 것이다. 선과 악은 애초에 정해져 있는 요소가 아니라 사회적 약속에 의해 생겨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는 리바이어던을 선과 악을 규정하는 주체로 삼아 그 절대성을 강화했다고 볼 수 있다.
Ⅲ. 의의
홉스는 사회 계약설을 최초로 제시한 학자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이는 유럽 세계에 널리 퍼져있던 왕권신수설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홉스는 당대에 있어 크나큰 비판과 멸시를 받아야만 했다. 이러한 그의 사회 계약설은 이후 로크와 루소와 같은 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그들은 각자만의 생각으로 새로운 사회 계약설을 완성시켰다.
이 뿐만 아니라 몽테스키외는 홉스의 사회물리학(social physics)의 영향을 받아 법의 연구를 가치판단으로부터 "순수화"시키고 체계적인 경험적 관찰에 기초시키려 시도한 점에서 법사회학에 있어서도 크나큰 영향을 줬다고 봐도 될 것이다.
Ⅳ. 감상
많은 이들이 홉스의 ‘사회 계약설’과 ‘성악설’에 주목하지만, 그는 ‘성악설’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인간의 이기심을 인정했을 뿐이다. 이기심은 자연 상태의 인간이 가지는 본성이라는 것이 홉스의 생각이다. 그렇기에 그는 인간의 이기심을 선악의 잣대를 들이대고 평가하지 않았다. 그냥 원래 그런 것이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가 선악을 내세웠다면 오직 리바이어던에 의해서였다.
그가 만들어낸 리바이어던은 모두의 주권을 양도받은 권력체이다. 그렇기에 리바이어던의 뜻에 거스르는 어떠한 행위도 홉스의 관점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그는 저항권을 전면적으로 부인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홉스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생존권이었다. 리바이어던을 만들어낸 이유도 결국은 생존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홉스는 리바이어던에 의해 자신의 생존에 위협이 생긴다면, 저항할 것이 아니라 리바이어던을 떠나라고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모두가 생존하기를 원했던 홉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공포와의 쌍생아’는 홉스를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 아닐까 싶다. 공포와 혼란한 상황은 그의 생애에 있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은 그의 몸을 힘들게 했지만, 그의 사상을 완성시키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의 전 인생에 걸쳐 따라다닌 배신과 음모가 홉스로 하여금 인간을 철저히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컴퓨터가 쓴 글을 읽고 있는 느낌이 든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와 종교를 비판하고 있는 부분을 제외하면 말이다. 이는 그가 겪어낸 혼란한 상황과 더불어 물리 사회학적 연구방법론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홉스를 향한 많은 비난들이 있지만, 왕권신수설과 가톨릭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대세들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새로운 사상을 쌓아 올린 홉스의 독자성과 자주성은 인정받아 마땅한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자연과학을 통해 인간사회를 해석하려 한 점은 융합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큰 귀감이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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