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오스만화, 근대적 도시 정비 모델의 원조
나폴레옹, 오스만 남작에게 도시 정비를 맡기다
일련의 혁명과 수많은 지도자 교체를 반복한 뒤 나폴레옹 3세는 제 2제정을 열었다.
당시에는 도시가 정비되지 않아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의 창궐은 많은 이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이러한 상황과 더불어 철도회사에 대한 민간 자본투자가 더 이상의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못하는 자본의 한계에 부딪혔다.
나폴레옹 3세는 폭동방지, 전염병 예방 그리고 새로운 투자처라는 목적을 가지고 오스만 남작을 센지사에 임명하여 파리의 도시 정비를 맡겼다.
오스만의 파리 정비, 대성공을 거두다
오스만은 대대적인 파리정비를 시도하였고 크나큰 성과를 거두어 많은 나라들이 이를 자국에 적용하려 하였다.
오스만화가 가져온 도시구조의 변화는 크게 소통망의 확충, 상하수도망과 녹지공간 확대, 공공건물 건설 그리고 파리영역의 형성이다.
대로를 신설하여 도시의 구도심과 새로운 외곽지역을 연결하였으며 개선문에는 방사형 도로 12개를 연결했다. 파리의 숲들이 정비되었으며 도심 곳곳에 공원이 조성되었다. 또한 경찰서, 극장, 학교와 같은 공공건물이 건설 되었으며, 파리 주변 소읍 18곳을 파리시에 편입시켜 오늘날의 파리 영역을 형성했다.
파리의 대대적 도시 정비는 전영병과 도시폭동을 예방하기 위한 것으로, 바리케이드를 쉽게 치지 못하고 군대의 진입을 원활하게 할 대로 건설과 전염병 방지를 위한 위생설비 확충을 최우선으로 하였다.
파리의 오스만화, 그 양면성
오스만화는 도심의 노동자 밀집 주거 공간을 파괴하였으며, 투기를 부추겨 땅값 상승의 결과를 발생시켰다. 이로 인해 도심에 거주하던 노동자들이 파리의 주변구들로 떠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오스만화는 쾌적하고 편리한 주거도시 형성과 도시 공간의 사회적 분화를 심화라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오스만은 현대에 들어 파괴자 또는 지혜로운 도시계획가로 불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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