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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불교의 12 연기설 - 마이클 S. 가자니가의 이론과 더불어

by 정치! 2020.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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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12 연기설  - 마이클 S. 가자니가의 이론과 더불어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12 연기의 사상적 배경  
Ⅲ. 12연기란

 Ⅳ. 12 연기 끊기

Ⅴ. 나가는 말


Ⅰ. 들어가는 말

 

  열반경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인도의 한 왕은 장님들을 모아 코끼리를 만져보게 했다. 왕이 물었다.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말해보라." 그러자 상아를 만져본 이는 '무', 귀를 만져본 이는 '키', 머리를 만져본 이는 '돌', 코를 만져본 이는 '절굿공이', 다리를 만져본 이는 '널빤지',배를 만져본 이는 '항아리', 꼬리를 만져본 이는 '새끼줄'같다 했다. 

위의 이야기에서도 보듯이 한 부분을 통해 전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그것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태도이다. 전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여러 부분에 대한 통찰과 이것들의 종합이 필요하다. 앞으로 내가 하려는 작업도 이와 같다. 세계와 인간을 설명하는 불교의 12 연기 사상과 마이클 가자니가의 이론을 고루 살펴봄으로써 세계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자 한다.

 

Ⅱ. 12 연기의 사상적 배경

 

  고타마 붓다는 형이상학적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거나 얽매이기보다는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기에 고타마 붓다가 당면하여 해결하고자 했던 것은 인생고의 문제였다.
  그가 수행을 통해 깨달은 바는 이렇다.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무상- 거기에는 고정적인 실체라는 것이 없는데-무아- 거기에 무엇인가 상주 불변의 실체-아-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에 집착하기 때문에 번뇌가 생겨서 고통받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그 번뇌는 무명과 갈애에 입각한 것이므로("십이연기설"), 바른 수행("팔정도")에 의해 지혜를 완성하여 진리에 눈을 뜨게 되면 마침내 갈애를 끊고 일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서(해탈) 이상의 경지-열반 또는 평화-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12 연기의 사상적 배경이라고 할 수 있겠다.

 

 

Ⅲ. 12 연기란

 

 연기는 영어로는 "dependent arising (의존하여 생겨남)으로 번역되는데, 연기의 법칙은 "이것이 있으면 그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그것도 없다"라고 서술된다. 이 서술에서 "이것"과 "그것"의 두 항목은 서로 연기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즉, "그것"은 "이것"을 의존하여 일어나는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사제설(四諦說)인 고집멸도(苦集滅道)는 집과 고라는 연기하는 항목과 도와 멸이라는 연기하는 항목을 합하여 병렬한 것이다. 연기(緣起)하는 항목들로는 이들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대표적인 열 두 항목을 사용하여 설명된 연기설이 12 연기설이다.
  이러한 12 연기설은 가자니가가 말하는 삽화적 기억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삽화적 기억은  주관적 시간을 통해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로 정신적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 정신적 시간 여행은 미래에 경험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하는’것뿐만 아니라 삽화적 기억의 ‘소유자’가 자기 인지적 인식을 매개로 하여 이전에 ‘생각했던’ 경험을 회상할 수 있게 한다. 뇌를 보았을 때, 삽화적 기억을 담당하는 네트워크가 다른 기억 체계를 지원하는 네트워크와 중첩되므로 이러한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고 가자니가는 말하고 있다. 삽화적 기억의 본질은 세 가지 개념-자아, 자기 인지적 인식, 주관적 시간-의 결합에 있다.

 

 


Ⅳ. 12 연기 끊기

 

  12 연기를 끊고 윤회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삼법인을 깨달아야 한다. 삼법인이란 우리를 둘러싼 모든 현상은 항상 변하며 모든 존재는 실체가 없으니 무상 무아의 깨달음을 알고 모든 번뇌를 내려놓으면 영원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이라고 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스스로를 인식함을 알 수 있는 메타 자기 인식이란 의식 수준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기반성의 가능성이 충분하다. 불교에서는 이를 불성이라 한다. 따라서 삼법인의 깨달음은 과학적으로 보나 종교적으로 보나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삼법인에 담겨있는 과학을 찾아보자.

1. 제행무상  

실체가 없는 존재로써 환각을 상정해보자. 어떠한 자극이 시각체계를 속여 환각을 일으킬 때 그것이 환각임을 깨닫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또한 그것이 환각임을 의식적으로 안다고 해서 그 환각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것은 뇌가 각자 역할이 나눠진 모듈 구조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뇌가 모듈 구조로 분류되어있음을 깨닫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지금 감각하고 있는 실체가 환각이 아님을 증명하는 일은 쉽지가 않을 것이다. 이는 곧 불교에서 말하고 있는 무상과 일맥상통하는 것은 아닐까? 

2. 제법무아

자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가자니가의 동료들은 자아는 신비로운 존재가 아니라 지식 구조임을 강조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자기 지식에는 네 가지 범주가 있고, 각기 다른 형식으로 분류되어 뇌에 저장되어있다고 한다. 개념적 자아, ‘이야기’로서 자아, ‘이미지’로 보이는 자아 마지막으로 삽화적 기억의 결합 네트워크로서의 자아가 그것이다. 좌뇌 해석자는 이러한 정보들을 풀로 붙여 혼돈 속에서 자기 자아를 창조해 낸다. 따라서 자아라는 것은 실체가 아니라 좌뇌가 만들어낸 지식구조임을 알 수 있다. 이는 고타마 싯다르타의 ‘무아’ 개념과 통한다.

3. 열반적정

앞의 내용을 통해 봤을 때 제행무상과 제법무아를 깨우치는 것은 ‘뇌’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는 일과 같음을 알 수 있다. 과연 인간이 ‘뇌’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일까? 답을 미리 말하자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뇌의 가소성’ 이론이다.
  뇌 가소성이란 뇌의 신경 경로가 외부의 자극, 경험, 학습에 의해 구조 기능적으로 변화하고 재조직화되는 현상이다. 쉬운 예로 뇌 손상의 치료를 들 수 있다. 뇌졸중에 의한 뇌손상은 일상적인 신체활동을 위한 수의적인 움직임을 불가능하게 하여, 실제적인 불구상태를 야기하는 가장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운동 경험을 통해 뇌신경이 재조직화될 수 있으며 특정한 운동피질 영역의 기능이 변화될 수 있다.
  이처럼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서 우리는 뇌를 변화시킬 수 있다. 이는 곧 열반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음을 뜻한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방법으로 ‘팔정도’를 제시하고 있다.
   


Ⅳ. 나가는 말

 

  지금까지 12 연기의 사상적 배경과 주요 내용, 그리고 12 연기를 끊는 방법에 대해 마이클 가자니가의 이론을 통해 고찰해 보았다. 이를 통해 불교가 곧 과학이며, 과학이 곧 불교임을 알 수 있었다.   
  불교에서는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에 비로소 진실한 깨달음의 진리가 있다고 한다. 불교와 과학은 각각 우뇌와 좌뇌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다.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좌뇌와 우뇌를 골고루 개발시키는 일이 진리에 도달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참고문헌

  • 마이클 S. 가자니가 저, <왜 인간인가>, 추수밭
  • Johansson 저, 허우성 역, <초기 불교의 역동적 심리학>,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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