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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서양철학 #사상가] 인간을 긍정한 철학자, 장자크 루소 - 배경, 생애, 사상, 의의, 감상

by 정치! 2020.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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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 #사상가] 인간을 긍정한 철학자, 장 자크 루소 - 배경, 생애, 사상, 의의, 감상



이 글의 순서

 

Ⅰ. 사회적 배경  
Ⅱ. 생애 
Ⅲ. 저술내용을 통해 본 사상 

  1. 학문예술론 
  2. 인간 불평등 기원론

  3. 사회계약론

  4. 에밀
Ⅳ. 의의 
Ⅴ. 감상 

 


  Ⅰ. 사회적 배경 


 
  루소가 활동한 18세기 유럽은 절대주의 국가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는데, 이는 중세의 봉건사회에서 근대적 민주사회로 옮겨오는 과도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이 시기에는 근대사회의 외면적 요소로써 초기 자본주의적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근대 사회를 완성하는 내면적 요소로써 계몽주의 사상이 팽배하였다. 

 


 

루소와 같은 시대를 살다 간 대표적인 계몽사상가로는 볼테르, 몽테스키외, 달랑베르와 같은 인물을 꼽을 수 있다. 인간 중심의 사고를 바탕으로 전개된 근대화는, 18세기 계몽시대에 이르러 미국의 독립전쟁과 프랑스혁명으로 완성단계에 들어가게 되었다.


  Ⅱ. 생애


  
  루소는 제네바에서 태어났으며 유년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이후에 루소는 이탈리와 프랑스 등에서 하인, 서기, 비서와 같은 일을 하며 사회의 각 계층과 소통할 수 있었다. 

 


 

학자로서의 그의 인생은 30대 때 크나큰 전환기를 맞게 된다. 그의 나이 37세 디종 아카데미의 논문 공모전에 응시하여 『학문 예술론』이라는 논문으로 명성을 얻게 된다. 이후에 쓴 논문 『인간 불평등 기원론』 역시 많은 이들의 관심을 샀으며, 그의 나이 49살에 쓴 『신 엘로이즈』를 통해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듬해 펴낸 2권의 저서 『사회계약론』과 『에밀』은 루소 사상의 진수를 엿볼 수 있는 저서로써 그의 정치 사회철학과 교육철학이 담겨있는 저서이다. 하지만 이 저서의 일부 내용이 당시의 가톨릭 정서와 맞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었기에 루소는 망명길에 오르게 된다.

 


  Ⅲ. 저술 내용을 통해 본 사상


  

  1. 학문 예술론


  이 논문은 그가 디종 아카데미의 논문 현상 공모에 응시한 논문이다. 이 논문으로 루소는 최고상을 차지하는 영예를 얻었다. 이 논문이 최고상의 영예를 거둘 수 있었던 까닭은 논문을 통해 루소가 인간은 본성적으로 선하며 단지 제도에 의해 사악하게 됨을 주장함으로써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집트, 그리스, 로마 그리고 페르시아와 같은 고대국가를 사례로 들어 학문과 예술의 발전이 풍속을 퇴폐시켰음을 증명했다. 그렇기에 그는 당시의 시민들에게 공화주의적 덕과 애국심을 갖출 것을 호소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그의 지속적인 예술 활동과 모순되었다. 루소는 이에 대해서 학문과 예술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학문과 예술을 더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가르치는 것이 나쁜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미 타락한 인간과 사회가 더욱 타락하지 않기 위해 예술이 필요함을 내세웠다.

 


  2. 인간 불평등 기원론

 


  이 논문 역시 디종 아카데미의 논문 현상 공모에 응시한 논고였다. 이 논문을 통해 루소는 인간의 본성을 왜곡시킨 시간과 사물의 과정을 탐구하고자 했으며, 인위적 인간과 자연적 인간을 비교함으로써 인간의 완성 속에 불행의 참된 원인이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는 인간의 자연 상태를 기술함에 있어 홉스와 큰 차이를 보였다. 홉스와 달리 루소는 자연 상태의 인간은 생활자원이 풍부한 상태에 있으며, 관계가 결여된 고립된 상태에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생존을 위협하는 상태에 직면한 인간은 점차 타인과 협조와 경쟁이라는 관계를 맺게 됨으로써 사회적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때 사유재산이 등장하며 첫 번째 혁명이 발생하게 된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루소는 사유재산의 도입과 함께 전개된 분업생산력의 발전인간성의 황폐화를 야기한 요소라고 꼬집었다. 그렇기에 루소는 앞서 제시한 두 개의 논문을 통해 자연 상태의 인간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3. 사회계약론

 


  루소는 베네치아에서 거주할 당시, 외교관 밑에서 일을 하며 정치가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자각은 그로 하여금 정치경제학에 관심을 쏟게 만들었다. 이후 『백과전서』편찬 사업에 참여한 루소는 음악 항목과 더불어 정치 경제 항목을 대부분 집필하였다. 일련의 논문과 백과전서 편찬사업에 참여하며 자신만의 사상을 쌓아 올린 루소는 그의 말년에 『사회계약론』과 『에밀』을 저술했다. 이전의 논문들이 그의 문제 인식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라면, 다음 두 작품은 그가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계약론』은 ‘어떤 정치체제에서 인간은 자연 상태의 선한 마음과 행복을 회복할 수 있을까?’에 대하여 루소가 기나긴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을 써 내려간 저서라고 볼 수 있다.

 



  루소는 인간이 생존을 위해 사회를 세우게 되는데, 이때 ‘폭력’이 아닌 ‘계약’을 통해 사회를 쌓는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계약’에 대하여 기나긴 장에 걸쳐 서술하고 있으나 짧게 정리하자면, 계약은 ‘일반의지’라는 내용으로 형성되며 이는 모든 이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보고 있다. 이처럼 일반의지를 토대로 한 사회계약의 결과가 바로 정치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렇기에 정치체는 인간의 희생을 요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인간을 위한 것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프랑스혁명에 큰 영향을 끼쳤다.


  4. 에밀

 


  ‘어떻게 교육시켜야 인간은 자연 상태의 선한 마음과 행복을 회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을 써 내려간 작품이 『에밀』이라 할 수 있다. 루소는 인간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교육을 통해 인간의 착한 본성을 사회에서도 유지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전제를 두고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를 저술하였다.

 



  크게 4부로 구성되는데 1부에서는 유아기의 교육을, 2부에서는 아동기의 교육을, 3부에서는 소년기의 교육을, 4부에서는 청년기의 교육을, 마지막으로 5부에서는 성인기의 교육을 다루고 있다. 


  
  그는 인간이 다른 사람과 자연의 손길에 전적으로 의존적인 존재로 태어난다고 보았다. 이처럼 연약하게 태어난 인간은 자신의 모습을 조형할 존재로 요청받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루소는 교육을 통해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에 도달할 수 있음을 제시했다.

 



  루소는 크게 세 가지의 교육을 제시했다. 자연의 교육, 사물의 교육, 인간의 교육이 그것이다. 자연의 교육이란 우리의 능력과 기관의 내부적인 발육을 말하며, 이러한 발육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 인간의 교육이다. 마지막으로 사물의 교육이란 우리가 갖가지 사물을 통해 경험함으로써 얻는 것들이다. 세 가지의 교육의 조화로 완성되는 균형 잡힌 인간이 루소가 생각한 자연인의 모습이었다.

 



  교육의 방법에 있어서 루소는 가변적인 인간의 교육과 경험의 교육이 불변적인 자연의 교육에 보조를 맞춰 진행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는 그가 제시한 ‘자연교육’의 실체이다. 이를 통해 루소는 사회와 문화에 의해 왜곡되기 이전의 본래적인 ‘인간’의 형성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Ⅳ. 의의

 

   
  그의 사상은 자연 상태의 인간을 긍정적으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가톨릭의 영향으로 인해 원죄설이 팽배한 사회에 성선설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인간과 그 본성 자체는 높이 평가될 수 있었다. 또한 그의 자연주의와 사회 계약설은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으며, 오늘날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기도 하였다.

 



  루소의 교육사상 역시 크나큰 의의를 지닌다. 『에밀』의 구성 방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각각의 시기에 맞춰 특성화된 교육을 해야 한다는 이론은 아이와 어른의 구분이 없었던 당대에는 혁신적인 것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에 와서도 그는 교육학에 있어 중요한 학자로서 평가받고 있다. 또한 교육으로써 인간이 완전한 존재로 나아갈 수 있다고 봄으로써 인간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Ⅴ. 감상

 

   
  루소의 인식은 홉스의 인식만큼이나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루소의 생애를 살펴보자면 홉스만큼이나 불행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인간의 선한 본성을 긍정했으며 인간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이에 반하여, 당시의 많은 계몽사상가들은 민중을 바라보며 그들의 가능성을 깨닫지 못하였고, 민주주의가 도입될 경우 어리석은 민중들에 의해 중우정치로 전락할 것이라는 생각에 입헌군주제를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을 너무도 긍정한 나머지 현실을 읽는 눈은 부족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자연 상태의 인간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한 루소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미 학문과 예술로 타락한 사회를 본디의 상태로 돌이키고자 한다면, 그 상태에서 해결책을 찾아나가야 하는데 루소는 현실이 아닌 자연 상태에서 해결책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의 사상을 오독하게 된다면 모든 것을 때려 부시고 새로운 사회를 세워야 한다는 생각에 과격파로 빠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비단 루소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계약설의 함정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의 사상이 영향을 끼친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로베스 피에르의 공포정치가 등장하였다. 혁명이 여기서 멈추었다면 프랑스 대혁명의 결과가 지금처럼 높이 평가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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