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사건을 접하고, 이와 관련된 국민 청원을 찾아다니며 힘을 보탰다. 그러던 중 SNS 에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을 사유해야 할 때”라는 내용으로 작성한 피드를 접하게 되었다. 그렇게 이 책을 다시금 꺼내들고 한나 아렌트가 우리에게 남긴 이야기들을 천천히 곱씹으며 읽어봤다.
한나 아렌트는 유태인으로서 나치를 피해 프랑스와 미국을 전전하며 무국적자의 신분에 대한 깊은 고찰을 했으며, 나치 장교였던 아인히만의 재판을 취재하며 ‘악의 평범성’ 개념을 제시했다.
그녀의 사유는 현 시대에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래의 문장들이 마음에 든다면 일독을 권한다.
악의 평범성 관련 책 속의 문장들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가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결코 어리석음과 동일한 것이 아닌) 순전한 무사유 Sheer thoughtlessness 였다 (96P)
* '공감능력상실'이라는 말은 최근의 유행어였다. 한나 아렌트는 훨씬 일찍 공감능력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아이히만의 재판을 취재하며, 한나 아렌트는 그의 평범한 모습에 주목했다. 회사에서 만날 수 있을 법한, 당장 내 옆집에라도 살고 있을 것만 같은 그의 모습을 보 아렌트는 악마적 실체가 아닌 '사유하지 않음'에서 그 잘못된 행위의 원인을 찾았다.
N번방 사건 조주빈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살았다고 말했지만 그는 어떠한 악마적 실체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피해자, 그리고 피해자 가족들이 겪게 될 고통'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돈'에만 몰두했다.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도 생각을 멈춘다면 언제라도 살인과 같은 최악의 범법 행위를 저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사유해야 한다. 이것이 옳은 행위인지 그른 행위인지, 그리고 이 행위는 어떤 결과를 낳게 될 것인지 말이다.
조주빈은 악마가 아니다. 오히려 아무 생각없이 인간의 피를 쫓는 좀비와 같이 아무 생각없이 돈만 쫓은 좀비와 같을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최악의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을 때, 우리 사회는 어떻게 지속될 지 사유해야 할 때이다. 그리고 사회적 정의가 실현시키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사유해야 할 때이다.
그 외의 책 속의 문장들
짧게 말하면, 인권과 양도 불가능한 권리에 대한 호소가 프랑스 혁명과 미국혁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긴 했으나, 아렌트는 추상적 인권에 대한 호소에 대해 깊은 의문을 품었다는 것이다. 그 권리를 보장하고 보호할 어떠한 효과적인 제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아렌트는 가장 근본적인 권리가 “권리들을 가질 권리” right to have rights 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권리들이 보장되고 보호되는 어떤 조직적 공동체에 속할 권리를 의미한다. “따라서 특정한 권리의 상실이 아니라, 여하한 종류의 권리라도 보호할 의지와 능력을 갖춘 공동체의 상실이 점차 증가하는 수많은 난민에게 발생한 파국이다. 인간은 인간으로서 자신의 본질적 자질 즉 인간적 품격을 상실하지 않고서도 소위 인권이라는 모든 권리를 상실할 수 있음이 드러난다. 정치체 자체의 상실만으로도 인간은 인류에게서 축출될 수 있다 (50-51 P)
의견의 형성은 고립되어 있는 고독한 개인이 수행하는 사적 활동이 아니다. 관점을 달리하는 의견들과 진정으로 직면할 때 – 이런 직면이 실제로 일어나든 또는 상상력을 통해 성취되든 간에 – 에만 의견은 검증될 수 있고 확대될 수 있다. 의견들의 적절성에 대한 변치 않고 영속적인 시금석은 존재하지 않으며, 의견의 판단에 관해서는 공적 토론을 통해 더 나은 논거를 찾는 방식 외에는 다른 무엇도 권위를 지니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정치적으로 평등한 이들로 구성된 공동체 그리고 자신의 의견을 타인의 비판에 기꺼이 노출하려는 태도가 의견 형성에 필요한 이유다 (110-111P)
아렌트는 진리와 거짓의 구분 자체가 의문시 될 때,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이 사실적으로 참인지에 대해 더 이상 신경쓰지 않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그 위험에 대해 주목한다 (124P)
전통적으로 볼 때 기본적인 정치적 질문은 누가 누구를 지배하며, 지배 유형의 차이는 무엇이며, 그 정통성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렌트는 훨씬 더 급진적인 방식으로 정치에 대해 생각했다. 정치는 무지배의 형식 A form of no rule 이다. 정치는 다른 사람에 대한 개인 또는 집단의 지배가 아니다. 오히려 정치적 평등이 정치의 본질이다 (132P)
억압자에게서의 해방은 자유의 필요조건일 수 있지만 적극적인 공적 자유를 달성하기 위한 충분조건은 결코 아니다. (138P)
권력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공동의 행위 to act in concert 를 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 상응한다. 권력은 결코 한 개인의 속성이 아니다. 그것은 집단에 속하며 그 집단이 함께 있는 한에서만 존재한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 ‘권력 가운데’ 있다고 말할 때, 실제로는 대다수 사람이 자신의 이름으로 행동함으로써 그에게 힘을 실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권력이 비롯된 그 집단이 사라지는 순간 ‘그의 권력’ 또한 소멸한다. (140P)
오늘날 우리가 아렌트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아렌트가 우리 앞에 아직도 버티고 서 있는 위험들을 예민하게 잘 이해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이지 않도록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렌트는 우리의 정치적 운명을 책임지라고 촉구한다.아렌트는 우리가 공동으로 행위할 능력이 있고, 새로운 것을 시작할 능력이 있으며, 자유를 지상의 현실로 만들기 위해 분투할 능력이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17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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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계속적으로 수정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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