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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서양철학 #사상가] 보수주의의 원조, 에드먼드 버크 - 배경, 생애, 사상, 의의, 평가, 감상

by 정치! 2020.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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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 #사상가] 보수주의의 원조, 에드먼드 버크 - 배경, 생애, 사상, 의의, 평가, 감상



이 글의 순서

 

Ⅰ. 사회적 배경과 생애  
Ⅱ. 저술 내용을 통해 본 사상 

  1. 《프랑스 혁명 및 이에 관한 런던 시민단체의 움직임에 관한 고찰》(1790) 
  2. 보수주의 정치 철학  

Ⅲ. 의의 및 평가 

Ⅳ. 감상 

 


  Ⅰ. 사회적 배경과 생애 



  1714년 조지 1세가 즉위하며 영국은 하노버 왕조의 통치를 받게 된다. 이후 하그리브즈와 아크라이트에 의해 새로운 방적기가 발명됨으로써 면직물 산업이 놀라운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후 증기기관이 동력으로 발명됨으로써 수송의 혁신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는 광대한 시장·자본·노동력과 맞물려 영국을 세계의 공장으로써 자리매김하게 하였다. 이러한 영국의 산업화는 명예혁명 이후의 정치와 사회의 안정에 크게 기여하였다. 

 



  영국의 정치사상가 버크는 이와 같이 안정화되어가고 있던 영국에서 그의 일생을 보냈다. 그는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태어나 고전 교육을 받은 후, 런던에서 법률을 공부했다. 일찍부터 문학연구에 몰두하고, 『자연사회의 옹호』(1756)와 『숭고와 미의 관념의 기원에 관한 철학적 연구』(1757)를 간행하여 문단으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이후 하원 의원이었던 해밀턴에게 발탁되면 그의 정치 활동이 시작되었다. 정치 활동을 하며 『현재의 불만의 원인』(1770)을 비롯하여 많은 정치적 논문을 집필하였고, 『프랑스 혁명의 성찰』(1790)에 서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엄혹한 비판을 전개했다. 이로 인해 근대 보수주의의 원조로 간주되어 왔지만, 버크에게는 개혁주의적인 측면도 있었다. 또한 미학자로서 레싱, 멘델스존, 실러 등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Ⅱ. 저술 내용을 통해 본 사상


 
  1. 《프랑스 혁명 및 이에 관한 런던 시민단체의 움직임에 관한 고찰》(1790)

 


  버크는 프랑스 혁명이 영국 등 여타 유럽 지역에 미칠 충격과 반향을 우려하였다. 실제로 일부 자유주의적 영국인들은 프랑스 혁명에 공감하거나 환호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위 저작을 통해 프랑스 혁명에 대한 예리한 비판과 논거를 가했다. 크게 1부에서는 프랑스 혁명 사태와 일부 영국인들의 경거망동한 행동들을 다루고 있으며, 2부에서는 프랑스 혁명의 실상을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3부에서는 국민의회의 무능함을 꼬집고 있다. 저술 내용을 통해 보수주의의 창시자로서의 버크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정치 행보를 살펴보면, 의회·정당정치의 근대화를 내세우고 미국 식민지를 옹호하는 등 급진적인 자유주의 사상을 대변하였다. 이는 그의 말년에 보여준 보수주의적 모습과 대조되는 면이 많다. 그렇기에 많은 학자들이 이를 ‘버크 문제’라고 부르고 있다. 

 


  2. 보수주의 정치 철학 


 
  1) 역사와 전통

 


  버크의 저서를 통해 그의 보수주의 정치 철학을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그는 역사와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역사를 경험의 누적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생각을 토대로 그는 ‘계약’이라는 관념을 ‘역사화’하였다. 또한 버크를 사회를 설명함에 있어 누적된 관행이나 전통 혹은 경험의 산물이라고 하였다. 버크에게 전통과 자연은 상호 모순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버크의 사회관은 생태학적 사회관과 유사하다. 그는 사회가 생태계적 균형 상태를 유지하며 점진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프랑스 혁명과 유사한 방식으로 사회를 재구성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를 통해 인간의 경험이 이성보다 앞선다는 그의 믿음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을 그는 편견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는데, 오래 지속되고 일반적인 편견이 사적 이성보다 낫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처럼 그에게 있어 편견은 집단적이고 영사적인 경험의 총체적 표현인 전통에서 흘러나오는 지혜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기에 그는 영국 헌정지혜의 축적으로 제시하며, “우리의 행복한 상태는 헌정에서 기인한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2) 시민 사회 - 종교, 재산, 자유

 


  사회계약론자들과 달리 버크는 사회를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버크에게 사회는 모든 것의 원천이자 모범이라고 할 수 있겠다. 버크는 사회를 지탱하는 두 요소로써 종교와 재산을 꼽았다. 그는 《성찰》을 통해 종교를 시민 사회의 기반이자 모든 선과 안락의 원천이라고 제시하였다. 또한 종교를 국가에 신성함을 부여하는 장치로 보기도 하였다. 이처럼 버크는 종교를 공적 제도로 인식하였다.

 



  그에게 있어 재산은 자유의 결실이자 기반이며, 재산의 보호는 정부가 수립된 목적이었다. 그렇기에 버크는 자유를 보호하는 데 있어서 가족, 교회, 지역 공동체, 길드와 같은 중간적인 집단들의 역할에 주목하였다. 이러한 집단들을 국가 권력에 대항하는 완충장치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버크는 재산의 핵심이 불평등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로써 버크가 자유와 평등은 양립할 수 없다는 보수주의의 원칙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버크가 자유를 절대 옹호한 것은 아니다. ‘자유’는 필요하지만 질서와 권위가 앞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렇지만 그는 “국가는 신성하며 유지되어야 하지만, 사적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함으로써 자유와 질서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됨을 제시하였다.
  


  3) 혁명

 


  버크의 보수주의 정치철학이 모든 변화와 개혁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보존’과 ‘교정’이라는 두 원칙으로 국가가 점진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가 생각한 개혁의 이상적인 모습은 ‘명예혁명’이었다. 이는 옛 헌정 체제의 전면적 변화가 아닌 결함 있는 부분만의 쇄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혁명에 관한 그의 생각은 “뿌리째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썩은 가지만 쳐주기”로 표현할 수 있겠다.

 


  Ⅲ. 의의 및 평가

 

 
  버크는 인간 이성의 불완성을 제시함으로써 당대의 계몽주의를 부정했다는 독자성을 지닌다. 이를 통해 경험적 지식으로 대변되는 전통을 내세움으로써 보수주의의 기초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이러한 그의 보수주의는 후에 레이건·부시로 일컬어지는 보수주의 정치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Ⅳ. 감상


  
  버크를 공부하며 ‘보수주의’‘혁명’에 관하여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영국의 정치가 윈스턴 처칠은 “20세에 보수주의자가 되는 것은 무정한 것이고 60세에 진보주의자가 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것이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위 말은 버크가 보인 이데올로기의 변화와 맞닿아있다. 처칠이 버크를 높이 평가한 정치가라는 점에서 재밌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나 역시 무정한 사람이 아닌지라 보수적이기보다는 다소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20대를 보냈다. 그렇기에 보수주의라고 하면 이내 ‘수꼴’과 같이 보수주의를 비하하는 단어들이 생각나고 그냥 꺼려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조화와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치우치면 좋을 게 없다는 것을 버크를 공부하며 깨우칠 수 있었다. 그가 내세운 피를 흘리지 않는 변화가 현실적이며 경제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갈아엎는 식의 혁명은 ‘모 아니면 도’가 아니라 ‘모 아니면 백도’라고 할 수 있지만 점진적·보수주의적 개혁은 ‘개라도 가자’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좌파·우파의 편 가르기 식 소모전을 그만두고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이외에도 그가 내세운 ‘전통’이라는 관념 역시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50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전쟁의 ‘폐허’를 산업강국의 ‘빌딩’으로 변모시켰다. 지금의 대한민국에 산다는 것이 선조들에게 무척이나 감사하고 죄송할 따름이다. 하지만 이제는 발전에 몰두하느라 홀대했던 전통을 다시 챙겨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버크가 내세운 지식의 정수로써의 ‘전통’의 관점은 무척이나 반가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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