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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책 속의 문장들

[세계의 리더들은 왜 철학을 공부하는가 (2) ] 선인의 지혜를 훔쳐라

by 정치! 2020.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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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리더들은 왜 철학을 공부하는가 (2) ] 선인의 지혜를 훔쳐라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렀다가, 신간 코너에 꽂혀있는 철학교양서적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지만, 사회에 나와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강의실에서 배웠던 선인들의 지혜를 다 까먹는 것이 현실이다. 지워지고 덧그리고 또 지워지고 덧 그리고를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철학 교양 서적이 참 많다.

 

유튜브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조승연 작가는 인문학을 설명하며 지혜를 훔치는 방법이라고 한다. 우리보다 앞선 시대를 살아간 이들, 그리고 우리보다 훨씬 많이 세상과 인생에 대해 고민했던 그들의 흔적들이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겨져 있다. 수천시간 수 만 시간의 고민으로 적어 내려 간 그들의 지혜를, 시원한 카페에서 편히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더없이 큰 행복이 아닐까 싶다. 합법적으로 그들의 지혜를 훔치고 내 것 삼을 수 있다는데,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래서 나는 철학 책을 참 좋아한다.

 

오늘 소개할 책은 중국에서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 다른 책들보다 중국 철학에 대한 내용이 많이 들어있다. 또한 AI로 철학자들을 구현해 강의실로 옮겨놨다는 설정이 무척 재밌었다. 이 책을 읽으면 누구나 대학 시절을 추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목차

  • 노자 '우리는 어디서 왔을까?'
  • 공자 '중용'
  • 헤라클레이토스 '운동'
  • 소크라테스 '자신을 아는 법'
  • 플라톤 '정신적 사랑'
  • 아리스토텔레스 '행복관'
  • 장자 '무위'
  • 아우구스티누스 '미학'
  • 데카르트 '의심'
  • 루소 '사회계약론'
  • 쇼펜하우어 '비관주의'
  • 니체 '권력의지'
  • 존 듀이 '교육철학'
  • 러셀 '논리 분석'
  • 사르트르 '자유'

 

책 속의 문장들

 

아우구스 티누스 '미학'

 

신, 아름다움의 근원 

"연구방향을 바꾼 뒤 나는 '아름다움'의 근원을 찾을 수 있었고,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지. 아름다움에 등급이 존재한다면 가장 높은 등급에 있는 아름다움이 바로 아름다움의 근원일 테니까. 그렇다면, 내가 가장 높은 등급의 아름다움이 무엇일 것 같나? 바로 신이었네. 신은 모든 아룸이자 가장 높은 등급의 아름다움이지. 세상 만물은 모두 신의 아름다움을 모방해서 아름답게 변하는 만큼 신은 유일한 진정한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네." (168P)

 

데카르트 '의심'

 

신, 완벽함의 실체

"만약 완벽함의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세계에 '완벽함'은 존재하지 않아. 하지만 우리는 모두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지. 그러니 '완벽함'이란 관념은 우리로부터 비롯됐다고 할 수 없네. 그렇다면 완벽함의 실체는 무엇일까? 나는 신이라고 생각하네.

 먼저 우리의 영혼에는 서로 다른 수많은 관념 중에서 전지전능하고 절대적으로 완벽한 존재에 대한 관념이 있네. 그래서 나는 이런 관념의 실체인 절대적이고 완벽한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183P)

 

영혼과 육체 그리고 송과선

"사람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철학적인 관점에서 출발한다면, 내가 봤을 때 사람은 영혼과 육체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어. 그리고 사람이 동물과 다른 건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거지.

 만약 육체에서 본다면 사람과 동물은 다를 게 없지. 심지어 어떤 면에서는 인간의 육체가 동물의 육체보다 못한 것 같기도 해. 하지만 영혼에서 본다면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비교적 명확해지네. 사람의 영혼과 육체는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누군가는 조타수와 배의 관계로 비유해서 영혼과 육체의 관계를 설명하기도 했지. 두 개의 완전히 독립되고, 다른 실체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하나의 객체를 형성하고 있는 거니까. 그렇다면 이런 과정에는 어떤 원인이 있을 수밖에 없겠지.

 내가 봤을 때 영혼과 육체가 서로 하나로 연결된다면 그것들은 필연적으로 어떤 방면에서 서로에게 작용하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네. 그렇다면 영혼과 육체는 어떻게 해서 하나로 연결될 수 있을까? 나는 그것들이 하나로 연결될 수 있는 이유는 사람의 육체에 특수한 기관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네. 바로 사람의 뇌 속에 있는 송과선이지. 이것이 다리처럼 영혼과 육체 사이를 연결해 주는 거야." (196-197P)

 

루소 '사회계약론'

 

사회계약 , 사회질서의 근원

"내가 봤을 때 우리는 모두 일정한 사회형태에서 살아가고 있고, 이러한 사회형태는 모두 일정한 사회질서를 가지고 있지. 그리고 이러한 사회질서는 자연에서 온 것이 아니라 우리 인류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네. 나는 이 점이 아주 필요하다고 생각하네.

 이러한 결합과 질서는 어떻게 구축되는 것일까? 여기에는 필연적인 합의가 필요하겠지. 약속을 통해 사회형태에서 양측이 결합할 수 있는 거야. 그래서 나는 이걸 사회계약이라 부르네." (203-204P)

 

사회계약의 편익과 기회비용

"물론 인간은 사회계약으로 원래의 자유와 원하면 언제든지 가질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한 권리를 잃게 되었다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잃음으로써 인류가 얻은 건 없을까? 이러한 것들을 잃음으로써 인류는 사회적 자유와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에 대한 소유권을 얻을 수 있었다네." (207P)

 

전체의견과 만인 의견

"'전체 의견'은 국민의 의지의 표현인 동시에 국가 전체 구성원의 공통 의지라 할 수 있지. 그래서 이건 영원한 진리와 같은 절대 개념이라 할 수 있네.

 많은 사람들이 '전체 의견'과 '만인 의견'의 개념을 헷갈리는데 본질에서 두 개념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네. '전체 의견'은 공동의 이익을 중심에 두는 반면 '만인 의견'은 개인의 이익에 중점을 두지. 그래서 '만인 의견'은 겉으로 보기에는 전체의 의견인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개별의 의지의 총화일 뿐일세.

 '전체 의견'은 정확한 동시에 공공의 이익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사회계약에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네. 그렇다면 사회계약을 통해 형성한 국가는 누가 관리하고 책임져야 할까? 답은 모두가 관리하고 책임지는 것이네. 설사 주권자라 할지라도 그 행위는 국민의 의지의 표현일 뿐이거든." (209-210P)

 

스스로 자신을 완성하는 능력

"가장 원시 상태에서 인류의 생활 구조는 가장 완벽했다고 말할 수 있네. 인류는 강인한 체력에 의지해 생존했으며, 동시에 야수의 본능을 참고해서 자신의 생존 상태를 개선해나갔지. 물론 아무리 강인한 체력이라도 늙어서 노쇠해지거나 죽음의 위협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자연 상태에서 인류의 질병은 사회 상태에서보다 훨씬 적었네.

 그리고 정신 상태에서 인류는 순수한 정신 앞 활동은 없었지만, 사유 능력 방면에서는 야수들보다 높았다네. 그리고 이러한 차이점에서 봤을 때 나는 인간이 주체적 능동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네. 그리고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핵심은 인류가 스스로 자신을 완성하는 능력이 있다는 데 있지.

 나는 이 능력이 인류의 모든 불행의 근원이라 보네. 이 능력으로 인류는 점차 자연의 원시 상태에서 벗어나 사회 상태로 들어서기 시작했지. 자연 상태에서 인류의 사회성은 아주 미미했어. 원시적인 자연 상태에서 인류는 손짓이나 고함으로 의사소통을 하지만 사회에 갖추어짐에 따라 의사소통의 범위가 넓어지고 전문화되면서 언어가 형성되기 시작했지.

 도덕에 대한 개념도 자연 상태에는 존재하지 않았지. 이 당시 인류는 도덕이나 의무에 대한 개념도 없었고, 아름다움과 추함, 선함과 악함에 대한 개념도 없었다네. 만약 굳이 최초의 자연 상태에서 도덕의 영향을 찾는다고 한다면 연민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네.

 그래서 자연이 인류 불평등에 미친 영향을 별로 크지 않네. 자연 상태는 인류가 정말로 행복했던 시기이며, 인류의 청춘 시기라고 할 수 있지. 그리고 인류가 사회 상태로 들어갈 때 겉으로는 진보한 것 같지만 사실은 점차 타락과 괴멸의 상태로 들어가고 있는 거네.

 자연 상태에서 우리는 인류 불평등의 근원을 찾을 수 없었으니 인류의 사회 상태에서 답을 찾아야겠지.

 앞서 언급했듯이 인류가 가진 스스로 완전해질 능력이 인류가 자연 상태에서 나와 사회 상태로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었지. 나는 이 능력 때문에 인류가 불행에 빠져들었다고 생각하네. 왜냐하면 사람마다 자아를 완성하는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간의 차이가 갈수록 두드러졌을 것이네. 악한 세력이 강한 세력의 도움이 필요해졌을 때가 바로 인류 불평등의 첫걸음이자 타락의 첫걸음이었던 셈이지." (213-215P)

 

쇼펜하우어 '비관주의'

 

인생은 고통과 허무

"인생은 '고통'과 '허무'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네. 사람은 욕망을 만족하지 못하면 고통을 느끼고, 욕망을 만족하면 할 일이 없어 허무감을 느끼지.

 사람의 욕망은 쉽게 만족할 수 없으므로 사람들은 대부분 고통만 느낄 뿐이야. 여러분 중에는 사람이 고통과 허무 말고 행복과 즐거움을 느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이건 내가 앞에서 얘기했듯이 한낱 꿈인 표상에 불과하네.

 표상과 의지는 동일성을 가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역할을 하는 건 표상이 아니라 의지야. 생명의 본질은 표상이 아니라 의지에 있으니까. 물론 내가 지금 말하는 의지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의지와는 차이점이 있네.

 내가 말하는 의지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흔들림 없이 일을 추진해 완성하는 의지가 아니라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맹목적이고 억제하지 못하는 충동을 말해. 이런 의지는 영원히 만족하지 못하는 욕구라 할 수 있지.

 이제 여러분도 내가 앞에서 말한 고통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쉬울 거네. 의지는 인생에서 끝없이 생겨나는 욕구이고 사람들은 이러한 욕구를 항상 만족하려 하지. 하지만 욕구를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아. 설사 한 가지 욕구를 만족시켰다 하더라도 계속 생겨나는 욕구를 만족시킬 수는 없어. 그러니 결국 불만족하게 되고 고통이 생겨나는 거야. 그러니 의지로 인해서 결핍의 고통이 생겨나는 셈이지." (221-222P)

 

예술, 고통에서 벗어나는 일시적 방법

"나는 인생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념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네. 그럼, 이념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의지와 표상 중간에 있는 부분으로, 본질과 현상이 함께 연결되어 있지. 그래서 사람의 인식이 의지의 속박에서 해방될 때,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술 감상을 말하네.

 예술 감상을 할 때 우리는 의지의 속박에서 벗어나 순수한 주체가 되어 욕구에서 벗어나 눈앞에 있는 예술 작품에 집중할 수 있네. 한마디로 우리는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감상하는 작품을 외부와 완전히 동떨어진 순수한 작품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지.

 이렇게 우리가 머릿속에 있는 잡념을 모두 떨쳐 버린 채 순수하게 관조적인 태도를 보일 때 우리는 세상과 자신을 잃어버리는 경지에 이르게 되네. 한마디로 말해서 자신을 잃어버리는 동시에 자신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자, 자신의 욕망을 망각함으로써 자신과 욕망의 관계를 망각하게 되는 것이지.

 지금까지 말한 내용과 앞에 시간에 수업한 내용을 연계해 본다면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지.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건 일시적인 방법일 뿐이야. 예술 감상을 통해서 자신의 욕구를 잊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해서 영원히 예술 감상만 하면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결국에는 원래 상태로 돌아와야만 하는 거지." (224-225P)

 

니체 '권력의지'

 

권력의지 

"나는 쇼펜하우어 선생의 의지와 표상, 두 가지 세계에 대한 이론에는 상당히 동의하지만, 표상의 세계를 싫어하지는 않네. 오히려 객체의 고통을 세분화하던 중 실체와 현상의 통일을 찾아냈지.

 그리고 나는 쇼펜하우어 선생이 생명 의지를 부정한 관점에는 동의하지 않네. 나는 인류가 고통을 벗어나는 방식을 더욱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거든. 그래서 나는 인생이 비극적이고 고통스럽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지만, 세상과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고통도 무릅써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들 '영웅' 또는 '초인'이라고 부르지.

 나는 이런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 생명의지 본체론을 '권력의지'의 본체론이라고 부르네. 그리고 디오니소스를 생명 의지의 상징으로 보지. 바쿠스는 충만한 생명감과 힘을 가지고 있어 그 안에서는 고통마저도 흥분제 역할을 하거든. 이처럼 생명의지의 가장 높은 유형의 희생 속에서 끝없는 기쁨의 춤을 추는 걸 나는 디오니소스적 정신이라 말하네

 사람에게 이것보다 더 오래되고 강렬하고 무정하고 억제할 수 없는 본능은 없네. 왜냐하면 이 본능이 바로 사람의 본질이니까. 생명의지의 운동은 비록 객체 생명의 파괴를 대가로 하지만 객체 생명의 탄생을 촉진해 우주 생명이 무궁하게 성장하고 영원히 운행할 수 있게 하지.

 나는 인류가 생존에서 가장 큰 성과와 가장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비밀은 생활에서의 위험에 있다고 생각하네. 디오니소스는 중요한 상징이라고 할 수 있지. 이것은 정신을 지배하고, 우리를 강인하게 바꿔 주지. 그러므로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 모두 내가 말하는 권력의지는 생명 의지이지만 생명을 구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권력을 구하는 의지이자 넓고 초월적인 의지라는 걸 알 수 있을 거네.

 인류뿐만 아니라 자연에 존재하는 생명체들도 마찬가지이네. 생명체들이 맨 처음 추구하는 것은 자신의 힘을 방출하는 것인 만큼 그 생명 자체가 권력의지를 보인다고 할 수 있지." (237-238P)

 

사람의 창조성

"사람과 동물이 가진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은 인간이 '미완성된 동물'이라는 데 있네. 그래서 인류는 더욱 자유롭게 발전할 여지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자신의 본질을 계속해서 창조하고 발전해나갈 수 있지.

 사람의 창조성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사람의 창조성은 자신의 본질을 더 높이 창조하는 데 있네. 따라서 자아의 초월과 종족의 진화에 이르는 것은 권력의지를 동력으로 삼은 것이지. 우리 자신보다 더 높은 본질을 창조하는 것이네. 한마디로 자신을 초월하는 것이지! 이것은 출산의 충동이자 창조의 충동이네. 모든 봉사자들이 하나의 목표를 선결 조건으로 삼는 것처럼 사람도 하나의 본질을 선결 조건으로 삼아야 하네.

 신은 이미 죽었고 인류가 스스로 자신의 생존 목표와 의미를 찾았다면 창조는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네. 나는 이렇게 인류가 계속해서 자신의 목표를 넘어 더 높은 본질로 나아가도록 인도하는 사람을 '초인'이라고 불러. '초인'은 전통적이거나 유행하는 도덕과는 다른 새로운 도덕을 가지고 있으면서 생명 의지를 가장 잘 체현할 수 있는 사람이네. 또 왕성한 창조력을 가지고 있어 생활력도 강한 사람이지." (247P)

 

초인에 대하여

"일단 '초인'은 몇 가지 방면에서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어야 하네. 먼저 초인은 인류의 생물 진화의 최고점에 서 있는 사람이자 가장 우수한 능력을 지닌 사람으로 다른 평범한 사람과 같을 수 없어야 하네. 두 번째로 초인은 천재이자 진정한 엘리트로 능력과 인품과 용기를 모두 갖추고 있어야 하지. 동시에 초인은 모든 걸 통치할 계획을 세우고 있고 조금도 나약하지 않은 성격이어야 하네.

 다른 방면에서 초인은 강자와 싸우는 걸 좋아하고 모험을 즐기는 사람이어야 하네. 가장 높은 도덕 이상을 가지고 있는 만큼 초인은 진리와 도덕의 화신이자 사람을 위해 법률을 제정하는 규범과 가치의 창조자이며 점유자라 할 수 있네. 하지만 절대 자유를 가진 초인은 스스로 만족하면서도 이기적인 사람이기에 평범한 사람들의 틈 사이에 들어갈 수 없지. 물론 여기서 오는 외로움과 고통은 초인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이네. 그들은 권력의지로 고통을 견딘 뒤 고통 속에서 다시 우뚝 일어서지." (248-249P)

 

예술에 대하여 : 아폴론, 디오니소스

"예술은 인류의 영혼을 정화하고 승화시켜 주지. 아폴론 예술은 사람들을 매력적인 환상 속으로 빠져들게 해 몸과 마음을 즐겁게 만들지. 반면 디오니소스 예술은 아폴론 예술에서 가려진 인류의 고통의 본질을 드러내 비극적이면서도 즐겁고 심지어 고통에서 더 나아간 파멸 속에서 특별하면서도 강렬한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네.

 그래서 나는 비극을 숭상하고 디오니소스의 정신을 숭상하네. 디오니소스 정신 속에 담긴 비극의 아름다움은 우리의 인생의 고난을 제거해 주고 우리에게 생존할 수 있는 용기를 주니까. 그리고 이런 예술은 고통을 없애 준 뒤 우리에게 인생의 즐거움과 계속 살아갈 동력을 제공해 주네.

 우리는 인생의 고난과 좌절을 직시하고 권력의지를 가질 필요가 있어.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비극을 통한 즐거움을 느낄 방법이 없지. 그래서 예술은 삶의 동력을 제공해 주는 위대한 수단이자 삶의 위대한 흥분제라고 할 수 있네." (255-256P)

 

존 듀이 '교육철학'

 

교육이란 무엇인가

"나는 사회적 동물인 인류가 일반 동물들과는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구성은 서로가 신앙, 이상, 감정 등의 요소를 주고받음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런 요소들이 결핍되어 있다면 사람들은 오랜 시간 같은 장소에 거주하면서도 진정한 사회를 형성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런 정신적인 요소들을 키울 수 있을까? 당연히 사람끼리 이루어지는 소통과 공감을 통해 키워질 수 있지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교육을 통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소통할 수 있는 다리를 건설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의 삶은 한정되어 있지요. 우리는 환경에 적응하며 스스로를 갱신 해나가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후세에 전수함으로써 연속해 나아가야 합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상, 희망, 즐거움, 고통의 재창조는 물질적 생존의 갱신을 수반하고, 사회 집단의 갱신이나 어떤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연속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교육은 가장 광범위한 의미에서 삶의 이러한 사회적 연속성을 유지해주는 수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 기초해 나는 교육은 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아이들은 생활 속에서 점차 성숙해지고 아이들의 능력도 점차 발전해가지요. 이렇게 없던 능력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성장했다거나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생활은 곧 발전인 거고, 끊임없이 발전하고, 성장해 나아가는 게 생활인 거지요." (260-261P)

 

학교란 무엇인가

"학교는 '작은 사회가 되거나 초기 형태의 사회가 되어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는데, 첫 번째는 학교 그 자체가 사회생활이라서 사회생활의 모든 의미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두 번째로 학교 안에서의 학습이 학교 밖에서의 학습과 서로 연관되어 자연스럽게 서로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267P)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교육의 목적은 개인이 자신의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 만약에 교육의 목적을 다른 곳에서 찾는다면 교육은 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될수밖에 없어요." (270P)

 

아동교육의 방법, 놀이와 노동

"아동은 선천적인 본능과 성격을 가지고 있는 만큼 교육은 이것을 기반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놀이'와 '노동'으로 아이의 본능을 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놀이'는 재미있는 방법을 사용해 아동의 어떤 방향을 발전시키는 것이지 무턱대고 노는 걸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은 성인들을 따라 하려는 본능이 있지요. 교육과정에서 만약 이런 본능을 이용해 여러 의미 있는 놀이를 만들어 낸다면 더욱 쉽게 지식을 쉽게 전수해 줄 수 있습니다.

 다양한 놀이 중에서 체육 놀이는 아동의 각종 능력을 훈련할 수 있는 동시에 사회능력도 기르게 할 수 있습니다. 체육 놀이를 진행하면 아동에게 협력과 단체 활동을 알려줄 수 있고, 지도 능력과 건강한 생활 태도를 길러줄 수 있지요.

 반면 '노동'은 아이들이 손과 머리를 사용하는 능력을 훈련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런 방법으로 아동에게 지식을 전수해 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와트가 수증기로 인해 주전자 뚜껑이 움직이는 걸보고 증기기관의 원리를 알게 되었듯이 아이들에게 직접 식물을 심어 물을 주고 키우게 하면서 식물학 지식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274-275P)

 

러셀 '논리 분석'

 

러셀의 인생

"나의 인생은 사랑에 대한 갈망과 지식의 탐구, 그리고 끊임없는 고만을 겪는 인류에 대한 동정심이었네. 순결하면서도 열정적인 세 가지가 내 인생을 지배해 왔지. 그리고 이 세 가지 열정은 폭풍처럼 거세게 나를 깊은 고통의 바다, 절망의 가장자리로 이리저리 몰아붙였네.

 먼저 내가 사랑을 갈망한 이유는 사랑이 나에게 강렬한 희열이 가져다주었기 때문이었네. 나는 몇 시간밖에 안 되는 즐거움을 위해서 내 남은 삶 전부를 희생하려 했던 적도 있었네. 또 내가 사랑을 갈망했던 이유는 외로움을 덜어주기 때문이었어. 내가 사랑을 갈망한 마지막 이유는 상대방과 사랑으로 결합할 때 신자들이나 시인들이 상상하는 천국의 신비한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지. 이것이 바로 내가 추구하는 것이었네. 인생에 비해서 지나치게 좋다고 할 만한 이것을 나는 다행히 거머쥘 행운을 누릴 수 있었네.

 나는 사랑을 갈망한 것과 같은 강렬한 열정을 가지고 지식을 탐구했네. 나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랐고,하늘 위 별들이 밝게 빛나는 이유를 알고 싶었으며, 피타고라스 사상이 가진 위력을 이해하고 싶었네. 나는 비록 이러한 방면에서 몇 가지 성과를 얻기는 했지만 광대한 지식의 바다와 비교해 보면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은 결코 많다고 할 수 없지. 그래서 나는 지식에 관한 탐구를 멈출 수가 없었네.

 이처럼 사랑과 지식은 나를 천국으로 이끌었지만, 끊임없는 고난을 겪는 인간에 대한 동정심은 언네자 나를 현실로 돌아오게 했네. 고통에 찬 사람들의 외침이 내 마음속에서 메아리를 치고, 굶주리는 아이들과 독재자의 억압에 고통받는 사람들,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자식들에게 짐이 되어 버린 노인들, 고독과 빈곤,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은 인류가 당연히 지향해야 할 이상을 비웃고 있네.

 어째서 누군가는 편안한 삶을 사는 데 누군가는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할까?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은 걸까? 그렇다고 볼 수는 없네.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불행을 겪지만, 모두가 불행에 대처하는 능력이 있는 건 아니야. 나도 사람들의 불행이 줄어들기를 바라지만 그건 내 능력에서 벗어나는 일이지. 그래서 나도 그 속에서 고통받고 있지.

 이것이 바로 내가 일생 추구하고 갈망했던 것들이네. 만약 한 번 더 살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나는 똑같이 이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갈 것이네. 비록 나는 하지 못했지만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은 귀중한 기회는 항상 자신의 손안에 있다는 걸 기억하길 바라네. 뭘 하고 싶든 자신의 양심에 부끄럽지 않고 사회 정의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열정을 가지고 추구해나가야 하네." (289-291P)

 

사르트르 '자유'

 

존재와 본질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책에서 나는 이 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네. '우리가 말하는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사람은 먼저 존재하고 자신과 만나며 이 세상에서 나타난 뒤에 비로소 그 자신을 규정한다는 의미이다. 만약 실존주의자가 말하는 것처럼 사람이 규정될 수 없다면, 그것은 사람이 처음에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는 나중에야 스스로 만들어 낸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사람의 본성은 없다. 왜냐하면 사람의 본성이란 개념을 가진 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 사람은 그가 상상하는 그런 사람일 뿐만 아니라 그가 원하는 그대로의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은 존재한 뒤에야 자신이 이렇다는 상상을 할 수 있으므로 사람은 존재한 뒤에야 그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람은 다른 게 아니라 그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297P)

 

내가 만들어 가는 나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타고난 본질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사회 조건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도 아니며, 더욱이 신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도 아니네.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완전히 자신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네. 우리는 모두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인 만큼 진정한 자신이 되고 싶다면 반드시 자신의 개성을 지키고 세상의 제약을 받지 말아야 하네.

 그리고 독립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하지. 자유롭게 선택한다는 건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어떤 사람이 될지를 결정하고, 자신을 규정한다는 의미야. 그러니 이 세계에서 그 누구도 나에게 뭘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지. 나 자신만이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될지 선택할 수 있네. 만일 여러분이 스스로 선택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한다면 선택은 어느새 여러분의 미래가 되어 있을 것이네." (304P)

 

족쇄를 찬 자유

"그렇다면, 어째서 자유가 족쇄를 차고 있다는 것일까? 그건 자신의 선택과 행동으로 초래된 모든 결과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야. 여기서 말하는 책임은 자유를 기초로 한 책임이지. 이러한 책임에느 두 가지 방면이 있는데 하나는 자유로운 선택과 행동으로 인해 자신에게 초래된 결과에 대한 책임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과 사회에 초래된 결과에 대한 책임이네." (30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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