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박동훈은 이지안에게 이렇게 말했다.
"모든 건물은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있을 수 있는 모든 외력을 계산하고 따져서 그것보다 쎄게 내력을 설계하는 거야. 항상 외력보다 내력이 쎄게.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고. 무든 일이 있어도 내력이 쎄면 버티는 거야."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나는 졸업한 이후, 문송한 삶을 살아야만 했다.
애초에 밥벌이를 목적으로 공부한 철학이 아니었기에 후회는 없었다.
오히려 철학을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이 감사했다.
어떤 위기에도 쉽게 쓰러지지 않는, 버티는 힘을 기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라는 박동훈의 말에 이지안은 내력이 뭐냐고 물어본다.
내 기준에 내력은 '그럼에도 버틸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하는데, 철학은 내력을 키우는데 효과적이라고 본다.
이 책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는 삶의 무기로 삼을 수 있을법한 철학 사상을 선별하여, 쉬운 말로 설명해주고 있는 철학 입문서로 볼 수 있다.
그 어떤 시련이 찾아와도 끝내 이겨내고자 한다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드라마에 명대사가 있듯이, 책에도 유독 내 마음을 파고드는 문장들이 있다.
이 책 중에서 필자가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을 아래와 같이 발췌하였다.
프롤로그 : 교양이 없는 전문가보다 위험한 존재는 없다
최근에서야 철학을 중심으로 한 교양 과목liberal arts이 앞으로 세상에 막대한 권력과 영향력을 미치게 될 엘리트를 교육하는 데 중요하다는 사실이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서양의 경우, 유럽의 엘리트 양성을 담당해 온 교육 기관에서는 오래전부터 철학과 역사를 필수 과목으로 가르쳐 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치-경제 분야에 무수히 많은 엘리트를 배출하고 있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간판 학부 PPE(Philosophy, Politics and Economics)에서는 철학이 세 학문의 필두로 꼽힌다. (4-5P)
혁신은 지금까지 당연했던 일이 당연하지 않게 된다는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 지금까지 당연했던 일, 다시 말해 상식을 의심하는 것에서 비로소 혁신이 시작된다. (13P)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이 상식을 의심하는 태도를 목에 익힐 게 아니라, 그냥 넘어가도 좋은 상식과 의심해야 하는 상식을 판별할 줄 아는 안목을 갖추는 일이다. 이러한 안목을 길러주는 것이 바로 공간축과 시간축에서 지식을 확산하는 일, 즉 교양을 갖추는 일이다. (14P)
지적 전투력을 극대화하는 50가지 철학-사상
1장 '사람'에 관한 핵심 콘셉트, 왜 이 사람은 이렇게 행동할까?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개인은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51P)
-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 기준에 예속, 복종한다
-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판단을 뒤바꾼다
다른 사람에게 창조성을 발휘시키고자 할 때 성과에 대한 대가, 특히 예고된 대가는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람이나 조직의 창조성을 파괴하고 만다. (중략) 다시 말해 사람이 창조성을 발휘하여 리스크를 무릅쓰고 나아가는 데는 당근도 채찍도 효과가 없다. 다만 자유로운 도전이 허용되는 풍토가 필요하다. 그렇나 풍토 속에서 사람이 주저 없이 리스크를 무릅쓰는 것은 당근을 원해서도 채찍이 두려워서도 아니다. 그저 단순히 자신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68-69P)
아리스토텔레스는 저서 『수사학』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타인을 설득해 행동을 바꾸기 위해서는 '로고스', '에토스', '파토스'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70P)
프롬의 분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자유에는 견디기 어려운 고독과 통렬한 책임이 따른다. 이 고독과 책임을 감당하고 견디면서, 더욱이 진정한 인간성의 발로라고 할 수 있는 자유를 끊임없이 갈구함으로써 비로소 인류에게 바람직한 사회가 탄생하는 법이다. 하지만 자유의 대가로서 필연적으로 만들어지는, 폐부를 찌르는 듯한 고독과 책임의 무게에 몹시 지친 나머지 그들은 비싼 대가를 치르고 손에 넣은 자유를 내던지고 나치의 전체주의를 택한다. 특히 나치즘을 지지하는 세력의 중심에 소상인, 장인, 사무직 근로자들로 이루어진 하층 및 중산 계급이 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87P)
우리는 외부의 현실과 자신을 각각 별개로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이를 부정했다. 외부의 현실은 우리가 어떤 시도를 하느냐에 따라, 혹은 하지 않느냐에 따라 '그러한 현실'이 된 것이므로 외부의 현실은 곧 '나의 일부' 이고 나는 '외부 현실의 일부'다. 즉 외부의 현실과 나는 결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 현실을 자신의 일로 주체적으로 받아들여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태도, 즉 앙가주망이 중요하다. (96P)
우리는 신념이 행동을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인과관계는 그 반대라는 사실을 인지 부조화 이론은 시사한다.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아 행동이 일어나고, 나중에 그 행동에 합치되도록 의사가 형성된다. 다시 말해 인간은 합리적인 생물이 아니라 나중에 합리화를 도모하는 생물이라는 것이 페스팅어가 내놓은 답이다. (112P)
현대와 같이 분업이 표준화된 사회에서는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자각조차 못 한 채 거대한 악행에 가담하고 있기 쉽다. 수많은 기업에서 행하고 있는 은폐와 위장은 바로 분업에 의해 가능했다. 이러한 행위를 막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떠한 체계에 속해 있는지, 자신이 하고 있는 눈앞의 일이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짚어보고 공간적, 혹은 시간적으로 큰 테두리 안에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후에 무언가 개혁이 더 필요하다고 여겨지면 용기를 내어 "이건 이상하지 않은가? 잘못된 게 아닌가!"라고 자기 의견을 적극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스탠리 밀그램, 권위에의 복종 122P)
2장 '조직'에 관한 핵심 콘셉트, 왜 이 조직은 바뀌지 않을까
어떤 사람의 판단을 정말로 신뢰할 수 있는 경우, 그 사람이 신뢰를 받게 된 것은 자신의 의견과 행동에 대한 비판을 항상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어떤 반대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고 옳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가능한 한 받아들였으며, 잘못된 부분은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를 스스로도 되짚어 보고 가능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설명하기를 습관으로 실천해왔기 때문이다. 한 가지 주제라도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다양한 의견을 두루 듣고 사물을 모든 관점에서 살펴보는 방법밖에 없다고 느껴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외의 방법으로 진리를 얻은 현인은 없으며 지성의 특성을 보더라도 인간은 이 이외의 방법으로는 현명해질 수 없다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138P)
게젤샤프트를 역할과 기능에 기초한 결속 관계로, 게마인샤프트를 우애와 혈연에 기초한 결속 관계로 생각하면, 이 두 커뮤니티가 함께 보장되지 않는 한 생산성과 건전성이 양립된 사회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늘날에는 최소한 대기업에서는 게마인샤프트적인 요소가 이미 완전히 붕괴되었으며 머지않아 미국에 등장하리라 예상되는 '완전한' 게젤샤프트로 옮겨갈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 전에는 촌락 공동체가, 이후 고도의 경제 성장기부터 거품 경제 시기까지는 기업이 담당하던 게마인샤프트의 역할은 무엇이 담당하게 될 것인가? 열쇠는 '소셜미디어'와 '두 번째 명함'에 있다. (147P)
막스 베버는 사람이 어떤 조직이나 집단을 지배하고자 할 때, 그 지배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요소는 '정당성', '카리스마, '합법성', 이 세 가지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157P)
과학 사회학의 창시자인 로버트 킹 머튼은 좋은 조건의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연구자는 뛰어난 연구 실적을 올림으로써 한층 더 좋은 조건을 얻게 된다는 '이익-우위성의 누적' 메커니즘을 지적한다. 머튼은 『신약성서』의 「마태복음」에 나오는 "부유한 사람은 점점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점점 더 가난해진다"라는 문장을 차용해 이 메커니즘을 '마태 효과'라고 명명했다. (171P)
외부의 혼란과 압력이 강해지면 성과가 저하되는 성질을 취약성의 정의라고 한다면, 대치되어야 하는 것은 '혼란과 압력이 강해지면 오히려 성과가 상승하는 성질'이라고 본 탈레브는 이를 '반취약성anti fragile'이라고 명명했다. (186P)
3장 '사회'에 관한 핵심 콘셉트,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환경에 더 적합한 개체가 살아남는다는 자연도태의 메커니즘에 가장 중요한 열쇠는 '적응력의 차이는 돌연변이에 의해 우발적으로 생겨난다'는 점이다. 돌연변이라는 비예정조화적인 변화가 적응력의 차이를 생성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깊다. 이 사고방식은 일종의 에러가 일어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에러'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는 배제하려 한다. 하지만 자연도태의 메커니즘에는 에러가 필수 요소로 내재되어 있다. 무언가 긍정적인 에러가 발생함으로써 시스템의 성과가 향상되기 때문이다. (218P)
뒤르켐은 주요 저서인 『사회분업론』과 『자살론』에서 아노미에 관해 언급했다. 『사회분업론』에서 그는 분업이 지나치게 발달한 근대 사회에서는 기능을 통합하는 상호 작용 행위가 결여되어 공통 규범이 생겨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우리에게는 매우 공감이 가는 지적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격차'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 이 격차는 거의 직업 간 격차다. 억대 연봉도 드물지 않은 외국계 금융 세계와 그들이 단지 '상품'으로 취급하는 외식 산업이나 건설 산업의 세계에 공통 규범이 성립하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222P)
보부아르는 저서 『제2의 성』 앞머리에서 그 유명한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은 격언으로도 간결하고 알기 쉬워서 20세기 후반에는 다양한 상황에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즉 보부아르는 생물학적인 여성과 사회적인 여성을 규정한 후에 "태어날 때부터 여자는 없다. 모두 사회적인 요구에 의한 결과로 '여자다움'을 획득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222-233P)
충족은 열량이나 에너지로서, 또는 사용가치로서 계산하면 곧 포화점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눈앞에는 명백히 그 반대 현상, 소비의 가속도적 증가가 펼쳐지고 있다. (중략) 이 현상은 욕구 충족에 관한 개인적인 논리를 근본적으로 포기하고 차이화의 사회적 논리에 결정적인 중요성을부여할 때만 설명할 수 있다. (장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 중에서, 255P)
세상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 그러한 세상에서 한층 더 공정한 세상을 목표로 싸워 나가는 일이 바로 우리의 책임이요, 의무다. 남모르는 노력이 언젠가는 보상받는다는 사고가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하자. (멜빈 러너, 공정한 세상 가설, 263P)
4장 '사고'에 관한 핵심 콘셉트, 어떻게 사고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포퍼가 지적하는 '반증 가능성'이라는 과학의 요건은 우리에게 과학에 대한 인식을 바꾸라고 채근한다. 다시 말해 진정한 의미에서 과학적이라는 것은 반론의 가능성이 외부를 향해 열려 있다는 것이며, 과학 이론은 반증 가능성을 가진 가설의 집합체일 뿐이라는 것이다. (306P)
탈구축은 쉽게 말해 이항대립의 구조를 무너뜨린다는 뜻이다. 자크 데리다에 의하면 서양 철학은 '선과 악', '주관과 객관', '신과 악마'와 같이 우열 구조를 전제로 발전해 왔지만, 탈구축에서는 이러한 우열의 구조 자체가 갖는 모순성을 밝힘으로써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틀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316P)
마지막으로 앨런 케이의 메시지를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3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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