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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 #테드TED] 능력주의의 횡포 (한국어판: 공정하다는 착각)

by 정치! 2020.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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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 #테드 TED] 능력주의의 횡포 (한국어판: 공정하다는 착각)  



이 글의 순서

 

* 들어가며

* 마이클 샌델의 말

 - 문제 제기 : 무엇이 우리를 갈라놓는가 

 - 문제 원인 1 : 능력주의가 일으키는 부정적 결과 

 - 문제 원인 2 : 그 자체로도 문제 많은 능력주의 

 - 문제 해결 방법 : 대학의 역할, 노동의 존엄성, 성공의 의미 

* 나가며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정치! 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 제목을 한 번쯤을 들어봤을 정도로, 그의 책으로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학교 교수가 10년만에 신간을 들고 찾아왔어요. 바로 공정하다는 착각(원제 : The Tryranny of merit 능력주의의 횡포)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최근 지인으로부터 생일 선물로 받게 된 책인데 아주 재밌게 읽고 있어요. 마이클 샌델 교수는 항상 주류와는 반대되는 생각들로 주목을 끄는데요. 분명한 것은 그가 다루는 화제들이 주류에는 반대되지만 무척이나 뜻깊고 또 옳은 부분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번 책에서는 ‘능력주의’에 대해서 샅샅이 파헤치는데요.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꼬집으며 과연 능력주의가 정답인지 생각해보게끔 하며, 책 말미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까지 제시합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마이클 샌델의 테드 영상은 418쪽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을 8분여짜리로 압축하여 설명하는 것으로써, 책을 읽기에 앞서 미리보기의 느낌으로 가볍게 보시기 좋을 것 같아요. 스크립트는 테드 공식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으며, 읽기에 편하시도록 영어 원문은 접어두었으니 번역을 읽으시다가 이해가 잘 안 되실 경우 원문을 함께 참고하세요!

 


마이클 샌델의 말

 

문제 제기 : 무엇이 우리를 갈라놓는가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이겁니다. 뭐가 잘못된 걸까요? 팬데믹 뿐만이 아니라 우리 시민의 삶에서요. 무엇이 우리를 갈라지게 하고 증오의 정치까지 오게 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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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s a question we should all be asking: What went wrong? Not just with the pandemic but with our civic life. What brought us to this polarized, rancorous political moment?

 



문제 원인 1 : 능력주의가 일으키는 부정적 결과

 

최근 수년간 승자와 패자사이의 골은 더 깊어져 정치에 악영향을 끼치고 우리를 갈라놓았습니다. 이 분열에 불평등도 일부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승패를 향한 우리의 태도도 여기에 한 몫했죠. 승리의 정상에 오른 사람은 자신의 노력으로만 성공을 했다는 믿음으로 자신들의 가치를 매기죠. 반면 경쟁에서 실패한 사람은 자신을 비난할 수밖에 없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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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recent decades, the divide between winners and losers has been deepening, poisoning our politics, setting us apart. This divide is partly about inequality. But it's also about the attitudes toward winning and losing that have come with it. Those who landed on top came to believe that their success was their own doing, a measure of their merit, and that those who lost out had no one to blame but themselves.


성공에 대한 이러한 사고방식은 꽤 매력적인 원칙으로 다가오죠. 모두가 평등한 기회를 얻는다면 승리는 온전히 승자의 것이기 마련이죠. 이것이 바로 능력주의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핵심이죠. 현실은, 물론, 동 떨어져 있습니다.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커서도 가난하게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유한 부모는 자식들에게 그들의 혜택을 물려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비리그 대학교 학생 중 상위 1% 소득층의 자녀들이 나라 전체 인구의 반을 차지하는 하위 소득 자녀들보다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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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way of thinking about success arises from a seemingly attractive principle. If everyone has an equal chance, the winners deserve their winnings. This is the heart of the meritocratic ideal. In practice, of course, we fall far short. Not everybody has an equal chance to rise. Children born to poor families tend to stay poor when they grow up. Affluent parents are able to pass their advantages onto their kids. At Ivy League universities, for example, there are more students from the top one percent than from the entire bottom half of the country combined.

 


 

문제 원인 2 : 그 자체로도 문제 많은 능력주의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부르짖는 이 능력주의 원칙에 부응하는데 실패해서가 아닙니다. (능력주의)원칙 자체에 결함이 있습니다. 여기엔 어두운 면이 있습니다. 능력주의는 공익을 좀 먹는 원칙입니다. 승자를 교만의 길로 인도하고 패자에게 굴욕만을 남깁니다. 성공한 사람에게 자신의 승리에 깊이 심취하도록 부추기고 성공하도록 도와준 운의 영향을 망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나보다 운이 없었던 사람들을 얕보게 만들어 그들이 나보다 실력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죠. 이것은 정치에 있어 중요한 문제입니다. 대중적 반발의 가장 유력한 원인은 많은 노동자가 엘리트 부류가 그들을 무시한다고 느끼는 데에서 옵니다. 이것은 합법적인 불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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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the problem isn't only that we fail to live up to the meritocratic principles we proclaim. The ideal itself is flawed. It has a dark side. Meritocracy is corrosive of the common good. It leads to hubris among the winners and humiliation among those who lose out. It encourages the successful to inhale too deeply of their success, to forget the luck and good fortune that helped them on their way. And it leads them to look down on those less fortunate, less credentialed than themselves. This matters for politics. One of the most potent sources of the populous backlash is the sense among many working people that elites look down on them. It's a legitimate complaint.


심지어 세계화로 인해 불평등 문제와 임금 불균형이 더욱 깊어지는 가운데 지지자들은 노동자들에게 신랄한 충고를 건넵니다. "세계화 시대에 경쟁에서 이기려면 대학 졸업장이 있어야 해." "배운 만큼 버는 거야." "노력한다면 성공할 수 있어." 엘리트 부류는 이러한 충고가 모욕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걸 모르죠. 대학을 가지 않는다면, 이 새로운 경제상황에 번영하지 못한다면 실패의 원인은 자신에게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죠. 많은 노동자가 왜 능력주의 엘리트에게 적대적인지 이해가 가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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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n as globalization brought deepening inequality and stagnant wages, its proponents offered workers some bracing advice. "If you want to compete and win in the global economy, go to college." "What you earn depends on what you learn." "You can make it if you try." These elites miss the insult implicit in this advice. If you don't go to college, if you don't flourish in the new economy, your failure is your fault. That's the implication. It's no wonder many working people turned against meritocratic elites.

 



문제 해결 방법 : 대학의 역할, 노동의 존엄성, 성공의 의미


그렇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우리의 시민 생활을 세 가지 측면에서 재고해 봐야 합니다. 대학의 역할, 노동의 존엄성, 성공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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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what should we do? We need to rethink three aspects of our civic life. The role of college, the dignity of work and the meaning of success.

 


대학의 역할 재정립


먼저 대학교의 역할을 기회의 결정권자로 여기는 태도에 대해 재고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일류 회사에 다니며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은 단순한 사실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바로 많은 사람들이 4년제 대학교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죠. 실제로 미국 인구의 3분의 2가 이에 속합니다. 그러니까 대학 졸업장이 존엄하고 좋은 삶의 필요조건이 되는 경제를 만드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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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should begin by rethinking the role of universities as arbiters of opportunity. For those of us who spend our days in the company of the credentialed, it's easy to forget a simple fact: Most people don't have a four-year college degree. In fact, nearly two-thirds of Americans don't. So it is folly to create an economy that makes a university diploma a necessary condition of dignified work and a decent life.


대학 진학을 장려하는 건 좋은 일입니다.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는 이들에게까지 기회를 넓힌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겠죠. 그러나 그것이 불평등의 해결책은 아닙니다. 경쟁사회의 전장에서 살아남도록 시민을 무장시키는 일에 집중하기보다는 학위가 없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필수적으로 기여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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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couraging people to go to college is a good thing. Broadening access for those who can't afford it is even better. But this is not a solution to inequality. We should focus less on arming people for meritocratic combat, and focus more on making life better for people who lack a diploma but who make essential contributions to our society.

 

 

노동의 존엄성 인식

 

일의 가치에 대해서도 재고하여 그것을 정치의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일은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닌 공익에 기여한다는 그렇게 인식하도록 만들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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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should renew the dignity of work and place it at the center of our politics. We should remember that work is not only about making a living, it's also about contributing to the common good and winning recognition for doing so.


로버트 케네디는 반세기 전 이런 말을 했습니다. 동료애, 지역사회, 애국심. 이 필수적인 가치들은 그저 물건을 소비하고 구매하는 것에서 오는 것들이 아니라고요. 충분한 보수가 제공되는 품위 있는 일자리로부터 오는 것이죠. 직원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할 수 있게 하는 일자리들이요. "저는 나라를 세우는 데 기여했습니다. 저는 위대한 공익사업에 참여했습니다." 이러한 시민 정서를 오늘날의 공공사회에서 찾기는 매우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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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F. Kennedy put it well half a century ago. Fellowship, community, shared patriotism. These essential values do not come from just buying and consuming goods together. They come from dignified employment, at decent pay. The kind of employment that enables us to say, "I helped to build this country. I am a participant in its great public ventures." This civic sentiment is largely missing from our public life today.

 


성공의 의미 재정립


우리는 종종 사람들이 버는 돈의 액수를 공익에 기여하는 바를 가늠하는 잣대로 여기죠. 그러나 이것은 실수입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예전에 그 이유를 설명했죠.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일어난 위생관리시설 직원들의 파업을 기억해 봅시다. 암살당하기 직전 킹 박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볼 때, 우리의 쓰레기를 수거하는 사람들은 의사만큼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질병들이 만연할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모든 직업은 고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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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often assume that the money people make is the measure of their contribution to the common good. But this is a mistake. Martin Luther King Jr. explained why. Reflecting on a strike by sanitation workers in Memphis, Tennessee, shortly before he was assassinated, King said, "The person who picks up our garbage is, in the final analysis, as significant as the physician, for if he doesn't do his job, diseases are rampant. All labor has dignity."


지금의 팬데믹이 이를 증명하고 있죠. 우리가 하찮게 여기던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사실 얼마나 많이 의존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 것이죠. 배달원, 관리직원, 식료품 가게의 점원, 창고 직원, 트럭 운전사, 간호조무사, 탁아소 직원, 자택 간병인 이들 모두 높은 임금을 받거나 큰 존경을 받는 직업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 직업 종사자들을 필수 인력이라고 부르죠. 지금이 바로 그들의 임금과 인식을 어떻게 하면 그들의 일에 대한 중요성과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있는지에 대한 토론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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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pandemic makes this clear. It reveals how deeply we rely on workers we often overlook. Delivery workers, maintenance workers, grocery store clerks, warehouse workers, truckers, nurse assistants, childcare workers, home health care providers. These are not the best-paid or most honored workers. But now, we see them as essential workers. This is a moment for a public debate about how to bring their pay and recognition into better alignment with the importance of their work.


그리고 지금이 바로 도덕, 정신적인 변화의 시점입니다. 능력주의의 교만에 의문을 가져야 하죠. 내가 성공한 원인이 윤리적으로 볼 때 오직 나의 실력이라고 할 수 있는가? 내가 잘나서 내가 속한 사회가 내가 가진 재능을 알아보고 상을 주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운이 좋았던 것일까? 성공을 자신의 공으로 돌리는 고집은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하게 하죠. 인생에서 운의 역할을 감사히 여길 때 우리는 겸손을 배울 수 있습니다. 출생이라는 단순한 사고인지 아니면 신의 은총인지 또는 운명의 신비인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여기 나는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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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is also time for a moral, even spiritual, turning, questioning our meritocratic hubris. Do I morally deserve the talents that enable me to flourish? Is it my doing that I live in a society that prizes the talents I happen to have? Or is that my good luck? Insisting that my success is my due makes it hard to see myself in other people's shoes. Appreciating the role of luck in life can prompt a certain humility. There but for the accident of birth, or the grace of God, or the mystery of fate, go I.


겸손의 정신이 바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민정신입니다. 이는 바로 우리를 갈라놓은 성공에 대한 가혹한 윤리로부터 돌아올 수 있는 길의 시작이죠. 능력주의의 횡포를 뛰어넘어 증오심 보다 너그러움이 더 많아진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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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pirit of humility is the civic virtue we need now. It's the beginning of a way back from the harsh ethic of success that drives us apart. It points us beyond the tyranny of merit to a less rancorous, more generous public life.


나가며

 

마이클 샌델은 능력주의를 꼬집으며 두 가지 방식으로 접근했어요. 먼저 능력주의가 잘 돌아가고 있느냐 입니다. 답은 NO입니다. 모두가 자신의 능력을 차별 없이 펼칠 수 있는 세상이라면 좋으련만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례로 개천에서 용 나는 시절은 이미 지났습니다. 있는 집 아이가 가난한 집 아이보다 양질의 교육에 접근성이 높기 때문이죠.

 


그럼 능력주의 그 자체는 옳은데 기반이 잘못된 걸까요? 답은 NO입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맘껏 펼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노력 뿐만 아니라 사회구조와 운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죠.

 


저 역시 상당 부분 샌델의 의견에 동의했어요. 부와 명예를 갖춘 자에게 성실과 인내 등 각종 미사여구가 붙는 현실, 그리고 잠깐의 실수나 방황으로 그렇다 한 자리에 오르지 못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멸시… 저 역시도 이런 관념을 가지고 살았음을 반성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미화원 분들이 의사 선생님들만큼 중요하고 값진 일을 해주시고 계시다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말이 큰 울림을 주었어요.

 


사회적 지위와 부를 떠나 모두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마땅한 존엄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끊임없이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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