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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책 속의 문장들

[#책추천 #도서리뷰] 소유냐 존재냐 / 무한생산 무한소비의 자본주의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책

by 정치! 2020.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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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추천 #도서리뷰] 소유냐 존재냐 / 무한생산 무한소비의 자본주의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책


들어가며

추석 때 고향집에 처박아둔 책을 정리했다. 글쓴이는 군복무 중에 책을 참 많이 읽었었는데, 그 때 당시 읽었던 책들이 참 많았다. 당시에는 헛헛함과 스트레스를 떨치는 방법이 독서였던 듯하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는 특히나 인상깊게 읽은 책이었다. 문학 작품을 통해, 꽃을 감상하는 동양과 서양의 태도를 비교하고 소유적 방식과 존재적 방식을 논하던 내용이 생각났다. 세상과 타인을 대하는 글쓴이의 태도의 상당 부분은 에리히 프롬의 이 책으로부터 배웠다.  


이 책은 :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 인간을 개체로 보느냐, 아니면 사회적 산물로 보느냐에 따라서 인간에 대한 관점은 크게 달라진다. 이 책의 저자 에리히 프롬은 “개인과 사회”라는 문제에 접근하면서, 개체로서의 본연의 인간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소유”와 “존재”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그런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줄 것이다.

이 책 「소유냐 존재냐」는, 특히 프롬의 사상세계에 관한 입문서로 적절한 책이다. 저자는 전문적인 학문적 자료를 피하면서 일목요연하고 읽기 쉽도록, 그가 이전의 저술들에서 한층 엄밀하게 (때로는 장황하게) 파고들었던 사유의 과정을 이 책 안에 요약하고 있다. 나아가 새로운 시각에서 간결하면서도 압축된 형태로 자신의 고백의 다양한 단편들을 종합해놓고 있다.……아마도 미래의 학자들은 프롬을―종교전쟁 말기의 저 위대한 휴머니스트처럼―용기 있는 이념을 가지고, 우리 모두가 한층 관용을 알고 도움을 주며 욕구를 모르고 평화를 사랑하는 인간이 되도록 기여한 저 제3의 힘의 대변자의 계열에 넣어 해석할 것이다. 그리고 휴머니즘적 항거파가 뿌리내리기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책 속의 문장들

 

서론 : 위대한 약속, 이행되지 않은 약속과 새로운 선택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1954년 11월 4일 노벨평화상을 받으러 오슬로에 왔을 때 온 세계인을 향해서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과감히 지금의 상황을 보십시오. 인간이 초인이 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 초인은 초인적 힘을 지닐 만한 이성의 수준에는 올라서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이전에는 온전히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던 사실, 이 초인은 자신의 힘이 커짐과 동시에 점점 더 초라한 인간이 되어간다는 사실이 이제 명명백백해졌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우리가 의식해야 할 점은, 이미 오래 전에 의식해야만 했던 점은 초인으로서의 우리는 비인간(非人間)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15P)

 

만약 18세기에 근본적 변혁이 들어서지 않았다면, 극단적 쾌락주의와 무제한적 이기주의가 경제행위를 주도하는 원칙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세사회나 그밖의 시대 여러 문명사회에서는, 또한 원시사회에서도 경제행위의 결정요인은 어디까지나 윤리적 규범이었다. (중 략) 18세기 자본주의는 단계적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다. 경제행위가 윤리 및 인간적 가치에서 떨어져 나오게 된 것이다. (22P)

 

 

제1부 소유와 존재의 차이에 대한 이해

 

열정적 삶의 옹호자요, 인간의 기계화와 해체에 맞서서 싸운 작가인 괴테는 수많은 시작품에서 소유에 반대하면서 존재의 편을 들었고, 극작품 『파우스트(Faust)』에서는 메피스토펠레스를 소유의 대표로 내세우면서, 존재와 소유 사이의 갈등을 극화시켰다. 존재의 특질을 더없이 간결하게 표현한 그의 짧은 시가 한 편 있다. (38P)

고유의 재산
나는 알고 있네, 내게 속한 것은 다른 아무것도 없음을.
오로지 나의 영혼으로부터
거침없이 흘러나오려는 사상과,
자애로운 운명이 베풀어준,
마음 밑바닥으로부터
향유하는 은총의 순간순간뿐임을

 

현대 소비자는 나 = 내가 가진 것 = 내가 소비하는 것이라는 등식에서 자신의 실체를 확인하는지도 모른다. (50P)

 

 

제2부 두 실존양식의 근본적 차이에 대한 분석

 

존재적 실존양식의 전제조건은 독립과 자유 그리고 비판적 이성을 지니는 것이다. 그 가장 본질적 특성은 능동성이다. 여기서 능동성이라고 함은 겉으로 보기에 바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힘을 생산적으로 사용한다는 의미에서 내면적 활동상태를 뜻한다. 이 활동상태는 인간에게 주어진 소질과 재능―타고난 정도는 다르지만― 천부적으로 갖추어진 풍요로운 인간적 재능의 표출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를 새롭게 하는 것, 자기를 성장시키고 흐르게 하며 사랑하는 것, 고립된 자아의 감옥을 초극하며, 관심을 가지고 귀 기울이며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 (130P)

 

이 고찰들은 인간의 내부에는 두 가지 성향이 있다는 결론을 허용한다. 그 하나는 소유하고자 하는, 자기 것으로 하려는 성향으로서 궁극적으로 살아남고자 하는 생물학적 소망에서 뻗어나온 힘이다. 다른 하나는 존재하고자 하는, 나누어가지고 베풀고 희생하려는 성향으로서 인간실존의 특유의 조건에서, 특히 타자와 하나가 됨으로써 자신이 고립을 극복하려는 타고난 욕구에서 나온 성향이다. 모든 인간의 내부에는 이 두 가지 상반된 성향이 있으므로 사회의 구조와 가치, 그리고 규범은 두 가능성 중에서 어느 한 쪽을 우세한 것으로 보는 입장을 취하게 된다. (중 략) 우리는 이 두 잠재성 가운데 어느 것을 개발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며, 아울러 우리의 결정은 그 어느 한쪽 성향으로의 해결을 조장하는 우리 사회의 사회경제적 구조에 상당 부분 달려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154P)

 

 

제3부 새로운 인간과 새로운 사회

 

한 사회의 사회경제적 구조는 그 구성원에 대해서 그들이 해야만 하는(have to, sollen) 일을 하고 싶어하도록(wish, wollen) 사회적 성격을 형성한다. 그렇게 형성된 사회적 성격은 사회의 사회경제적 구조에 다시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는 사회질서에 안정성을 부가하는 시멘트로 작용하며, 특별한 상황하에서는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폭발물을 제공한다. (192P)

 

"인간이라는 종은 진화과정에서 본능적 결정이 최소치로 감소하고 뇌의 발달은 최대치에 이른 시점에 출현한 영장류"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중 략) 이렇듯 인간이라는 종은 행동을 직접적으로 낳는 본능에 의해서는 행동동기를 부여받지 못한 반면, 자의식, 이성, 상상력을 관장하고 있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향해야 할 하나의 규범과 헌신의 대상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6-197P)

 

물론 앞에 예시된 투철한 휴머니스트들의 견해는 상당 부분 엇갈리고 더러는 완전히 상충되는 듯이 보이지만, 다음과 같은 요지에서는 모두 일치한다. (230-231P)

  • 생산은 인간의 참된 욕구에 부응해야 하며 경제체제의 요구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
  • 사람과 자연 사이에는 착취가 아닌 협력에 기초한 새로운 관계가 수립되어야 한다.
  • 상호 적대감은 연대감으로 대치되어야 한다.
  • 모든 사회적 제도의 최고 목표는 인간의 복지를 가져오고 인간의 고통을 저지하는 것이어야 한다.
  • 우리가 노력해야 할 방향은 소비의 극대화가 아니라, 인간의 복지를 증진하는 합리적 소비이다.
  • 개인은 사회생활에 능동적 동기로 참여해야 한다.

 

나는 다음의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실제로 인간의 성격은 변화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241P)

  • 우리는 고통을 받으면서 그것을 의식하고 있다.
  • 우리는 우리의 고통(불행)의 원인을 인식하고 있다.
  • 우리는 우리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 있다.
  • 우리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특정한 행동규범을 가져야 하며 현재의 생활습관을 변화시켜야 함을 인식하고 있다.

 

새로운 사회의 기능은 다음과 같은 성격구조의 특성을 가진 새로운 인간의 출현을 촉진시키는 일이다.

  • 완전히 존재하기 위해서 모든 형태의 소유를 기꺼이 포기할 마음가짐.
  • 자기 것으로 만들고 세계를 지배하며, 그래서 결국 자기 소유물의 노예가 되는, 그런 소유에의 욕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에 대한 믿음과 관계에의 욕구, 관심, 사랑 주변세계와의 연대감을 바탕으로 한 안정감, 자아 체험, 자신감
  • 나 자신 이외에는 그 누구도, 그 어떤 사물도 나의 삶에 의미를 주지 않는다는 사시을 받아들이는 것. 이같이 투철한 독립과 무(無)의 상태(no-thingness, Nichtheit)로의 귀의는 베풀고 나누어 가지는 데에 헌신하는 완전한 사회참여의 전제가 될 수 있음.
  • (중 략) 현시(顯示)된 모든 면에서 삶을 사랑하고 경외감을 느끼는 것. 아울러 신성한 것은 삶과 삶의 생장을 촉진시키는 일체의 것이지, 사물이나 권력,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

 

경제와 정치를 인간의 발전에 종속시키려면, 새로운 사회의 모델을 소외되지 않은, 존재지향적 개인의 요구에 부응하여 설계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그 존엄을 잃을 지경의 빈곤 속에 사는―이것은 여전히 인류 대다수의 문제이다―상황에 처해져서도 안 될뿐더러, 끊임없는 생산증대와 아울러 소비증대를 요구하는 자본주의적 경제법칙에 떠밀려서, 오늘날 여러 산업국가의 부유 소비계층의 경우처럼 한낱 소비인(Homo consumens)으로 전락한 실존을 영위하도록 운명지어져서도 안된다는 의미이다. 인간이 자유로워지려면, 다시 말하면 병적 과소비로 산업을 추진시키는 악순환에서 빠져나오려면, 경제체제의 근본적 변혁이 있어야 한다. 병든 인간을 제물로 하고서 그 건강을 부지하는 오늘날의 경제적 상황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우리의 과제는 건전한 인간을 위한 건전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252-253P)


나가며

에리히 프롬은 이 책에서 인간의 사회적 성격을 변화시킬 수 있는 조건으로 '인식'을 들고 있다. 우리가 고통받고 있음을 '인식'하며, 그 고통의 원인을 '인식'하고, 그 극복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이를 위해서는 특정한 행동규범을 가져야 하며 생활습관을 고쳐야 함을 '인식'한다면 인간의 사회적 성격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읽는이로 하여금 위 내용과 관련하여 세상과 인간을 다시금 인식하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이 책의 역할은 여기까지이다. 그 실천은 이제 독자들에게 달려있다. 또 한번 조금은 다르게 살아가야 겠다고 마음먹게 도와준 책이다. 잊을때 즈음 다시 꺼내어 읽어보고, 또 잊혀질 때 즈음 다시 또 읽어보고 그렇게 조금씩 인식을 반복하며 내 실천 또한 나아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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